거짓과 편견으로 가득찬 지명 연구자의 논문 의문들 (Ι)

 

지명 연구자의 거짓 주장 (1)

 

  1) 고구려 살수(薩水)를 고려가 청천강(川江)으로 일컬었고,

  2) 신라 살매현(薩買縣)을 고려가 청천현(川縣)으로 일컬었으므로

  3) 대응관계로, 고구려는 고려어 ''이라고 말한 준거이다. 과연 그럴까?

  4) 백제 마돌현(馬突縣)은 백제 마산현(馬山縣)의 대응관계로, ‘큰들' 즉 대평원이다.

      (마돌현은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 일대인데, 대평원이라고 한 것이다.)

  5) 백제 돌산현(突山縣)()+또는 (+)의 조합이다.

     (여수 돌산도에 경주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형산강물이 흐른다는 이야기이다.)

  6) 신라 굴아화촌(屈阿火村), ‘골벌 즉 곡읍(谷邑)’ 정도의 의미이다.

     (참고로 이곳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일대 대단위 아파트촌이다.)

  7) 이들의 후학들은 연구가 잘못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학회에서 추인하여 정설로 만들었다. 후학들도 공부하지 않기는, 마찬가지 인물들이다.

 

 

1. 고려는 살수를 청천강(川江)으로, 살매현(薩買縣)을 청천현(川縣)으로 일컬었다.

 

                         <1> 고려사지리지 안북대도호부 영주1) : 살수를 청천강(淸川江)으로 기록했다.

 

                        <2> 고려사지리지 청천현(淸川縣) : 충북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1.1. 지명 학자의 거짓된 주장

 

 1) 고려가  <도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구려 살수를 淸川(청천강)’으로 불렀는데2), 靑川江(청천강)으로 불렀다고, 거짓 논문을 작성하여, 고구려는 고려의 (청)()’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문과 대학생에게도 교수하여, 국문과 출신 기자들도, 국문과 교수들도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2) 고려는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라 살매현(薩買縣)3)을 청천현(靑川縣)으로 부른 사실이 없다. 고려 역시 청천현(淸川縣)4)으로 일컬었다. 문제는 이 지명 학자가 "푸를 靑''맑을 '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3) 이것으로 그치면 좋겠지만, 각종 논문이 고구려어가 신라. 백제가 속한 삼한어와 다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4) 일단의 지명 학자는 수십 년 전부터, “고구려어가 어느 것은 삼한어와 같고, 어느 것은 다르다라고 주장한데 이어, 잘못된 연구를 바탕으로, 고구려를 삼한과 떼어 놓으려고 하고 있다. 이 사람들 학자가 맞는가?

 

2. 백제 마돌현(馬突縣)은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 일대인데, 대평원이라고?

 

                        <3> 전북 진안군 마령면 8번지에 있는 마이산5) : 이 일대를 대평원이라고 한다.

 

                       <4> 고려사지리지  마령(馬靈)의 기록 : 마령 유마이산(馬靈有馬耳山)이 보인다.

 

3. 백제 돌산현(突山縣)은 전남 여수시 돌산도인데, ''이나 ''이 있다고?

 

                        <5> 돌산읍 금오산 상공에서 촬영한 항공사진 : 이곳에 이나, ‘(梁)이 있다 한다.

 

                        <6> 고려사지리지 전라도 승평군 돌산현 : 지금까지 돌산도(突山島)이다.

 

4.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일대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데, ‘골벌谷邑(곡읍)이라고?

 

                   <7>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일대 항공사진 : 이곳이 골벌{곡읍(谷邑)}이라고?

 

                     <8> 굴화리 일대 : 태화강에 의해 땅이 굽어, '굽은믈가' 즉 굴아화(屈阿火)이다.

 

4.1. 지명 학자와 삼국사기지리지의 잘못된 만남

 

   1) 백제 마돌현은 전북 진안군 마령면 일대인데, 마령면 8번지에 마이산이 있다. 이들은 마이산 일대를 큰들즉 대평원이라고 주장했고, 지명 학회의 추인을 받아 지금은 정설이 되었다. 이 연구자나 학회 후학들이나 <도4> 고려사지리지6)만 보았더라도, 이런 주장을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각종 지리지도 보지 않고, 현재 지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지명 연구를 하는 것이 문제점이다. '馬突'이란 (馬石)을 의미하고, ‘(귀 이)’가 생략된 형태이다.

   2) 백제 돌산현(突山縣)7)은 전남 여수시 돌산도 일대를 말하는데, 돌뿐인 돌산도에 무슨 즉 평원이 있고, ‘즉 경주 형산강과 같은 ()’이 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突山 : 돌+山 즉 현대 '돌산'의 어원인데, 평원이라고?

   3) 신라 굴아화촌(屈阿火村)8)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9) 일대로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평원이데, ‘골벌이라고?

 

   4) 이들 연구의 공통점은,

 

    각종 지리지를 비교분석조차 하지 않았고,

    ⑵ 해당 군현의 현재 지명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⑶ 명색이 지명학자인데, 지형도 모르고

    ⑷ 해당 군현의 현재 지도조차도 제대로 본 일이 없다.

 

  5) 각종 지리지와, 해당 군현의 지도, 지형도 등을 논문 각주에 기록하지 않고, 오직 언어학적 상상력만으로, 삼국사기지리지에 기록된 지명을 해석하니, 삼국의 언어를 제대로 해독할 리가 없다. 게다가 삼국사기지리지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으니,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랴!

  6) 삼국사기지리지와 대한민국이 이들을 잘못 만나, 정말 고생을 심하게 한다.

 

거짓과 편견으로 가득찬 지명 연구자의 논문과의문들 ()

 

지명 연구자의 거짓 주장 (2)

 

 1) 고구려가 삼현현(三峴縣)을 밀파혜(密波兮)라고도 불렀으므로, 대응관계로 고구려는 숫자 을 밀()이라고 말했다.

 2) 고구려가 오곡군(五谷郡)을 우차탄홀(于次呑忽)이라고도 불렀으므로, 대응관계로 고구려는 숫자 우차(于次)’라고 말했다.

 3) 고구려가 칠중성(七重城)을 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불렀으므로, 대응관계로 고구려는 숫자 난은(難隱)’이라고 말했다.

 4) 고구려가 십곡군(十谷郡)을 덕돈홀(德頓忽)이라고도 불렀으므로, 대응관계로

     고구려는 숫자 ()’이라고 말했다.

  5) 신라 지명어 밀(密)은 나물이사금(奈勿尼師今) 혹은 나밀이사금(那密尼師今)의 대응관계로, '密(밀)'은 '勿(믈)'의 음차이다.

  6) 신라 추화군(推火郡) 역시 신라가 개칭한 밀성군(密城郡)의 대응관계로, ‘믈벌로 해석한다.

  7) 신라 추량화현(推良火縣) 믈벌정도로 해석한다.

  8) 신라 추포현(推浦縣) 역시 밀진현(密津縣)으로 개칭했으므로, 대응관계에 의거, ‘+의 조합으로 해석한다.

   위와 같은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아래 증거를 사료 보면서 확인해 보자.

 

 

5. 고구려는 숫자 ()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크다'라고 했다.

 

                      <9> 고려사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사() :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10> 고려사지리지 왕경 개성부 덕수현(德水縣) : 현재 개성특급시 개풍군

 

   1) 위 <도9> 고려사지리지에서 보듯이, 사물현은 경상남도 사천시10)인데, 사물현(史勿縣)과  사수현(泗水縣)11) 의 대응관계로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신라어 勿(믈) = 水(슈)

 

   2) 위 <도10> 고려사지리지에서 보듯이, 고구려 덕물현은 북한의 개성특급시 개풍군12)인데, 고구려 덕물현(勿縣)과  신라 덕수현(水縣)13)의 대응관계로,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함께 기록된 고구려 덕물현(德勿縣) 일운 인물현(仁物縣)도 함께 해석을 하도록 하겠다.)

 

        ⑴ 고구려어 勿(믈) = 水(슈)14)

        ⑵  신라어 德(덕) = 고구려어 德(덕)15) = '크다'

        ⑶  고구려어 仁(인)16) = 고구려어 德(덕) = '크다'

 

   3) 그러므로 고구려어 덕(德)은 신라어와 똑같이 크다이지, 숫자 이 아니다.

 

   4) 소위 지명 학자라고 하는 사람, 어느 누구도 삼국사기지리지 34권과 35권 및 고려사지리지 및 세종실록지리지를 비교 분석해 보지 않은 것이다. 만약 비교해 보았다면 위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5) 게다가 학회에서도 인정해서는 안되는 논문인데, 어느 누구도 위에 기록한 문헌과 비교 분석조차 하지 않고, 박수치고 추인하여, 정설로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들에 의해 놀아난 꼴이다.

 

                   <11> 개성특급시 개풍군 위성사진 : 개풍군 앞으로 임진강, 한강, 예성강물이 모여 든다.

 

   4) 고구려가 무엇 때문에 개성시 개풍군을 큰믈골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위 <11>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개풍군 앞으로, 임진강, 한강, 예성강물이 모여 들기 때문에, 큰믈골덕물현(德勿縣)’이라고 한 것이다.

   5) 만약에 지명 학자들의 주장대로, ()이 숫자 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보자. 덕물현(德勿縣)십물현(十勿縣)으로 바꿔 쓸 수 있으므로, 개풍군 앞으로 예성강, 임진강, 한강물 외에,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물이 모두 모여 들어야 十勿(십물)이 된다. 이런 엉터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6. 고구려 숫자 ',' ''이다.

 

                      <12> 광개토왕릉비문 : 맨 오른쪽에 대산한성(大山韓城)이 보인다. 인터넷에서 퍼옴

                   

 

   1) 명색이 지명 학자인데 이들은 각종 지리지와 광개토왕릉비문조차 비교 분석하지 않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2) 광개토왕릉비문17)에 백잔을 쳐서 공취한 성이 기록되었는데, <12>와 같이 대산한성(大山韓城)이 보이는데, 이곳을 역사학계는 백제 한성(漢城)으로 보고 있고, 실제로 광개토대왕이 백제 아신왕을 무릎 꿀린 장소이기도 하다.

   3) 삼국사기지리지 35권 신라 한주(漢州)18)에, '한주는 본래 고구려 한산군(漢山郡)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한주는 고려의 광주(廣州)라고 했는데, 이곳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일대를 일컫고 백제 수도였다.

 

    ⑴ 광개토대왕능비문과 삼국사기지리지 35권의 대응관계로 비교 분석하면, 고구려어 = ,(한)이다.

    ⑵ 위 고구려 덕물현과 함께 비교 분석하면, 고구려어 = () = () : ,이다.

    ⑶ 우리 언어의 구조상 삼한어는 .漢(한)이면, ,漢(한)이다.19)

    ⑷ 고구려어 ,,.漢(한)이므로, 고구려 숫자 .漢(한)일 수밖에 없다.

    고구려 숫자 ,漢(한)이고, ()이 아니고, '크다'라고 한다면,

        고구려 숫자 체계는, 삼한과 같을 수밖에 없다.

    ⑹ 그러므로 지명 학자가 주장하는 ㈀ 고구려는 숫자 을 밀()이라고 한다든가,  ㈁ 우차(于次)’라고 한다든가, ㈂ 난은(難隱)’이라고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7. 고구려, 신라어 ()'미르 용()'이라는 고대어이다.

 

7.1.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현풍천20) 앞 낙동강 변

 

                      <13>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위성지도 : 낙동강변에 동물 머리가 나와있다.

 

                      <도14> Daum 2008년 위성사진 : 멋진 용머리가 낙동강에 나와 있다.

                     <15> 2018년 현풍천앞 낙동강 : 안타깝게도 현재는 MB의 낙동강 준설 공사로 사라졌다.

 

   1) 수천 년 이상을 버텨온 달성군 현풍면의 낙동강 변 미르 ()’, 영문도 모른 채 낙동강에서 사라져갔다. MB4대강 공사로...

   2) 낙동강에 툭 튀어 나온 동물 형상의 모래톱은, ‘, , 도 있고, ‘까지 달렸다. 삼국시대에 뿔 달린 동물 중에 ()’과 음이 비슷한 동물은, 상상속의 동물 미르 ()’ 밖에 없다.

   3) 지명 학자는 '믈벌'이라고 주장했지만, 신라 추량화현(推良火縣)21)을 올바르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推 : (밀다) 훈음차 미르(龍)22)

     良 : 곧을(곧다) 훈음차 ()

     推良火 : 미르곶 {현대어 : 용곶벌 (龍串)}

 

  5) 필자는 MB에게 요구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앞 미르곶(龍串)’을 살려 놓으라고! 지금 쓰다가 후손에게 곱게 물려 줄, 아름다운 이 강산에, 함부로 삽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참고로 필자는 환경론자가 아닐뿐만 아니라. 환경론자도 못된다.)

   6) 청와대에게도 요구한다. 무참히 사라져간 현풍면의 ⑴ 미르곶을 잊지 않도록, 또 다시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도록, Daum 2008년도 위성사진을 영구히 지도상에서 보존하도록, 조치해 주기 바란다. 그것만이 앞으로 닥쳐올지도 모르는, 또다른 환경 파괴를 막을, 조그만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하니까.

   7) 지명 학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에게도 요구한다. 그대들이 신라 추량화현을 미르곶벌이 아니라, ‘믈벌로 주장하였고, 이 잘못된 연구를 정설로 만들어, 무지막지한 MB가 낙동강에 삽질을 하는데도, 막지를 못했다. 그대들이 연구만 제대로 했어도, 학자적 입장에서 여론을 이끌어, 적어도 낙동강 준설 사업이라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대들의 연구가 잘못 되었다. 모든 국민에게 머리숙여 공개 사과를 하기 바란다.

 

7.2. 경남 밀양시 밀양읍 일대 : 신라 추화군(推火郡)

 

   <16> 경남 밀양시 위성지도 :  둥근 구슬을 물고 있는 동물 형상이다. <17> 밀양시 삼문동

 

   1) 신라 추화군(推火郡)23)은 경남 밀양시24) 일대를 일컫는다. 경덕왕이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했으므로, 위 추량화군(推良火縣)처럼 () = ’()‘의 대응관계가 성립한다.

   2) 일단의 지명 학자들이 신라 추화군(推火郡) : 밀성군(密城郡)’의 대응으로 () = ’()‘의 관계를 알아낸 것이다.

   3)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이 또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추화군(推火郡)믈벌로 해석한 것이다. 일견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믈벌이 아니라, '미르벌이었던 것이다.

   4) 밀양시는 밀양강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이다. <15>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전체 형상은 동물 모양인데, 아가리 부분에 둥근 구슬 모양이 지형이 보이는데, 이곳의 이름은 밀양시 삼문동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밀양시를 다음과 같이 재해석했다. 어느 것이 옳을지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推 : 밀 추 훈음차 미르

   推火 : 미르 {현대어 : ()}

    推火(추화) = 密城(밀성) = 密陽(밀양) = 龍城(용성) = 미르의 땅’ = ()의 땅

 

7.3. 경남 밀양시 밀양읍 일대와 변한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과의 관계

 

   1) 변한 미리미동국은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을 역사학계는 경남 밀양시 일대로 보고 있는데, 정확했다. 그 까닭은 밀양시가 미르의 땅이기 때문이다.

   2) 미리미동국이 늦어도 AD2~3세기에는 밀양시 일대에 건국되었을 텐데, 이는 심각한 언어학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3) ‘미리미르를 의미한다. 그런데 고대어 미르()의 훈이다. AD2~3세기는 원삼국시대인데, “누가 이들에게 미르 ()’이라는 음과 훈 및 용의 형상까지 가져 왔을까?” 하는 점이다.

   4) 용은 상상속의 동물로 중국의 상징이다. 중국에서 경남 밀양시 일대로 직접 들어왔다면, 지금처럼 이어야 한다. 그런데 미르 이다.

   5) 이는 우리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사라진 고대국가 '고조선 유민이 가져온 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6) 소름끼치는 일이다. 고조선의 언어 미르 이 경남 밀양시에 건국한 변한 미리미동국에서 발견되다니...

   7) 그런데 일단의 지명 학자는 ()미르의 음차인 것도 모르고, ‘믈벌이라고 해석을 잘못 함으로서, 어리석게도 고조선어를 밀양에서 발견한 공을 필자에게 넘겨주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8) 고조선은 한국어의 모태어(母胎語)를 사용하였고, 이들 유민이 고구려와 삼한에 널리 퍼져, 고조선 문화와 더불어, 한자와 언어를 전해 주었고, 고구려와 삼한의 원주민과 융합한 것이 역사적 기록이 아닌가?

   9) 고조선 유민이 우리의 모태어(母胎語)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와 삼한의 원주민과 쉽게 융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0) 그런 까닭으로 고구려어 () 역시 미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명 학자라고 자처하는 인물들은 제대로 연구도 않고, 고구려어가 삼한과 많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7.3. 경남 밀양시 하남읍에서 발견한, 신라어 密(밀)이 '미르 龍'인 증거

 

   1) 문헌학적으로도 신라어 ()미르인 것을 밀양시 하남읍 일대에 설치한 신라 추포현(推浦縣)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을 경덕왕은 밀진현(密津縣)으로 개칭했다. 문제는 밀진현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2) 사학자 두계 이병도 박사의 역주 삼국사기에서 단서를 찾아냈다. 그는 역주 삼국사기에서 신라 밀진현을 하남읍 남쪽을 흐르는 낙동강 지류인 용진(龍津)으로 비정했는데, 정확했다. 용진(龍津)은 용진강을 의미한다.

   3) 한자사전에 의하면, 용진강은 강 이름인데,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남쪽의 낙동강을 이르는 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한글로 용진강을 처 보기 바람)

   4) 이곳에 수산제가 있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곳의 제방은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龍津江)물이 국둔전으로 범람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쌓은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5) 결국 신라 밀진현(密津縣)25)은 경남 밀양시 하남읍에 있었던 것이다.

   6) 추포현(推浦縣), 밀진현(密津縣), 용진강(龍津江)의 대응관계로 다음과 같이 재해석하였다.

     ㈎ : 밀 추 훈음차 미르

         浦 : 개 포 훈차

         推浦(추포) : 미르개

     ㈏ 密津 : 미르 {현대어 : 용진(龍津)}

      ㈐ 龍津 ; 미르 {신라어 : 미르. 현대어 ; 용나루}

 

     ∴ 推浦(추포) = 密津(밀진) = 龍津(용진) = 미르 ()

 

7.3.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살고 있는 '미르 龍' : 고구려 밀파혜(密波兮)

 

                        <18>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설치한 고구려 삼현현(三峴縣) 일운 밀파혜(密波兮)

 

   1)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26) 일대에 고구려는 삼현현(三峴縣) 일운 밀파혜(密波兮)27)라고 불렀다. 일단의 지명 학자는 = ()’을 대응시켜, 고구려는 숫자 ()이라고 말했다.

   2) 고구려는 숫자 은 일본 숫자 (みつ(미쯔)를 닮았다고 주장하여, 학회의 인준을 받아 정설이 되었다고, 전술한 바 있다.

   3) 이들이 삼국사기지리지 37권만 읽고, 34권과 35권을 읽지 않아, 고구려어 ()크다인 것을 보지 못한 것을 증명해 냈다. 그 결과 고구려 숫자 이 아닌 것도 아울러 증명했다.

   4) 그렇다면 고구려어 ()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고구려, 신라 공통어 미르라고 전술한 바 있다.

   5) <18>을 보면, 양구군 방산면 일대를 흐르는 수입천이 만든 형상은, 귀도 있고, 이마도 있으며, 뭉뚝한 코도 있다. 게다가 무엇을 물고 있는 듯한 입도 있는 것이다. 고구려는 이 동물의 형상을 보고, ()이라고 부른 것이다.

   6) 과 비슷한 음을 가진 고대 동물은 상상속의 동물 미르 밖에 없다.

 

      密 : 음차 미르

      波兮 : 파혜 음차 바회

      密波兮 : 미르바회 {현대어 : 용 고개(용현(龍峴)}

 

   7) 본지명 삼현현(三峴縣)미르바회와 다른 뜻이다.

   8) 신라 추량화현(推良火縣)에도 일운 삼량화(三良火)가 기록되어 있다. 지명 학자들의 대응관계가 옳다면, 신라어 ()’에도 이 붙어 있으므로, 신라 숫자 도 일본 숫자 (みつ(미쯔)를 닮았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우물쭈물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쩍 넘어 갔다.

   9) 대응관계의 허점인 것이 분명함에도, 신라어는 묵살하고, 고구려에만 적용한 것이다. 이는 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10) 지명 학자라는 인물들은 고구려에 대하여, 대단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출자(出自)가 만주 길림성 환인현과 집안현 일대인 것을 미루어, 삼한과 많이 달랐다는 편견을 가지고 출발했다. 이들은 삼국사기지리지를 오직 대응관계 하나를 가지고, 언어학적 사고만으로 고구려어를 재단한 것이다. 그것도 문헌조차도 제대로 비교 연구도 하지 못하고... 불행한 일이다. 제대로 연구도 못하고, 고구려만 삼한과 분리해 내고 있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학자가 맞는가?

   11) 거짓된 연구를 발표하고, 학회의 추인 받았으며, 국문과 학생들에게 교수까지 하다니.

 

7. 구려어 문현현(縣) 일운 근시파혜(斤尸波兮)

 

                      <19> 양구군 해안면 : Punch bowl ; 고구려 문현현(文峴縣) 또는 근시파혜(斤尸波兮)

 

   1) 고구려 문현현(文峴縣) 일운 근시파혜(斤尸波兮)28)로 기록된 곳은, 북한의 강원도 회양군 문등리와 남한의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29) 일대를 일컫는데, 이곳은 6.25 사변시 격전지였다.

   2) 문등리(文登里)는 고대 강원도 회양군 문등현(文登縣)으로, 글자를 순서대로 해석하면, ‘글씨를 오른다.’이다. 이곳에 들리면 올라야할 글씨가 있다는 말이다.

   3) 문등리 2km 동쪽에 <19>과 같은 움푹 파인 거대한 분지가 나타나는데, 6.25 격전지 펀치볼(Punch bowl)이다. 펀치볼이란 <21>과 같이 서양화채그릇을 말하는데, 펀치볼 지형을 일컫는다.

   4) 고구려는 이 지형을 보고, 문현현(文峴縣) 일운 근시파혜(斤尸波兮)로 명명했는데, 그 글씨는 자 였다. 이는 펀치볼의 서양 문자 ‘U’자와 같은 형태인 것이다.

 

       <도20>~<도21> 양구군 해안면 일대 항공사진 : 자 지형(고구려), punch bowl 지형(서양 종군 기자)

 

   5) 필자는 지형을 이용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⑴ 文峴 훈차 글시고개

     ⑵  斤尸 음차 근시 글시

          波兮 음차 바회

          斤尸波兮 : 글시바회 {현대어 : 글씨고개}

 

   6) 필자의 해석은 지명 학자와 거의 같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문현현의 현재 지명과 지명 변화를 각주에 기록했고, 지형도와 그와 관련한 사진 자료를 첨부한 것이다. 이 지형도를 통하여 글시바회가 무슨 글씨인가 하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7) 이처럼 삼국인들은 지도와 지형을 매우 중시했는데, 지명 학자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대응관계로만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니, 다만 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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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종실록 154, 지리지 평안도 안주목 ; 安州: 牧使一人, 兼寧邊道中翼兵馬; 判官一人, 亦兼中翼兵馬。 本高麗彭原郡, 太祖十四年辛卯, 【唐 長興二年】 置安北府。 成宗二年癸未, 【宋 太平興國八年。】 改寧州、安北大都護府。 顯宗九年戊午, 【宋 天禧二年。】 改安北大都護府。 恭愍王十八年己酉, 置安州萬戶府、左勇右勇左猛右猛前勇後勇前猛後猛八軍, 各置上副千戶, 後改今名爲牧, 別號安陵。 【淳化所定。】 屬縣一, 安加。 乙頭山。 【在州東, 州人以爲鎭山。】 大川 淸川江。 【環州城北, 古稱薩水, 卽高麗 乙支文德, 敗隋將宇文述、于仲文等九將軍之地。 趙浚嘗題詩云: "薩水湯湯漾碧虛, 隋兵百萬化爲魚。(下略)

 2) 고려사 지리지 (김종서. 정인지) : 安北大都護府寧州 ; 本高麗彭原郡 (中略) 恭愍王十八年, 置安州萬戶府. 後陞爲牧. 別號安陵【成廟所定】, 有淸川江古稱薩水, 卽高句麗乙支文德敗隋兵百萬之地】. 領防禦郡二十五, 鎭十二, 縣六. (下略)

 3)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 신라 상주  ; 三年郡本三年山郡景德王改名今保齡郡領縣二淸川縣本薩買縣景德王改名今因之.

 4) 고려사 지리지 (김종서. 정인지) :청천현(淸川縣)은 옛 살매현(薩買縣)으로 고려에 이르러 지금 이름으로 부르면서 내속시켰다.

 5) 삼국사기 제37권 잡지 제6 : 백제 완산주 ; 完山 ; (前略) 任實郡馬突縣[一云馬珍]居斯勿縣.

 6) 세종실록 151, 지리지 전라도 남원 도호부 진안현 : 鎭安縣: (前略) 古屬縣一。 馬靈, 本百濟馬突縣, 新羅改馬靈縣, 爲任實郡領縣 爲任實郡領縣, 高麗初, 爲全州任。 所一, 刪朱,  馬耳 【在縣南, 新羅時, 稱西多山, 載小祀。】 (下略)

 7) 삼국사기 제36권 잡지 제5 : 신라 무주 ; 昇平郡 (中略) 廬山縣本百濟突山縣景德王改名今復故.

 8)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 신라 양주臨關郡 本毛火[一作蚊化] 聖德王築城 以遮日本賊路 景德王改名 今合屬慶州 領縣二 東津縣 本栗浦縣 景德王改名 今合屬蔚州 河曲[一作西] 婆娑王時 取屈阿火村 置縣 景德王改名 蔚州

 9) 세종실록 150,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울산군 : 蔚山郡: 本屈阿火村, 新羅婆娑王置縣, 景德王改名河曲, 【一作河西。】 爲臨關郡領縣, 高麗改爲蔚州郡。 顯宗戊午, 置防禦使。 【金富軾云: "景德王改于火縣爲虞風縣, 栗浦縣爲東津縣, 今改合屬蔚州"

 10) 세종실록 150,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泗川縣 : 本史勿縣, 景德王改名泗水, 爲固城郡領縣。 高麗初, 屬晋州任內, 顯宗辛亥, 改爲泗川 (下略)

 11)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 신라 강주 ; 固城郡本古自郡景德王改名今因之領縣三蚊火良縣今未詳泗水縣本史勿縣景德王改名今泗州 .

 12) 고려사지리지 왕경 개성부 덕수현 : 덕수현(德水縣)은 본래 고구려의 덕물현(德勿縣)인물현(仁物縣)이라고도 함으로, 신라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 9(1018)에 개성현의 속현이 되었다. 문종 10(1056)에 현에 흥왕사를 창건하고 현의 치소를 양천으로 옮겼다. 16(1062)에 내속시켰다. 공양왕 원년(1389)에 감무를 두었다. 조강도, 인녕도가 있다.

 13) 삼국사기 제35권 잡지 제4 : 신라 漢州 ; 開城郡本高句麗冬比忽景德王改名今開城府領縣二德水縣本高句麗德勿縣景德王改名今因之 (下略)

 14) 훈몽자회 (1527) 최세진 : 水 ; 믈 슈

 15) 훈몽자회 (1527) 최세진 : 德 ; 큰 덕

 16) 훈몽자회 (1527) 최세진 : 仁 : 

 17) 광개토왕릉비문 : (前略) 彌鄒城也利城山韓城掃加城敦拔城▨▨▨城婁賣城散那城那旦城細城牟婁城于婁城蘇灰」城燕婁城析支利城巖門▨城林城▨▨▨▨▨▨▨利城就鄒城▨拔城古牟婁城閏奴城貫奴城」(下略)

 18) 삼국사기 제35권 잡지 제4 : 신라 한주 ; 漢州本高句麗漢山郡新羅取之景德王改爲漢州今廣州 (下略)

 19) 한국어의 구조상으로 大가 '韓'이면, '一'도 '韓'이다. 삼한어가 이와 같은데, 고구려어 大가 韓이라면, 숫자 체계 역시 삼한어와 같다. 지명 연구자가 제대로 연구조차 하지 않고, 일방통행식  "대응관계"는 잘못이다.

  20)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 신라 양주 ; 火王郡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眞興王十六年置州名下州二十六年州廢景德王改名今昌寧郡領縣一玄驍縣本推良火縣[一云三良火]景德王改名今玄豊縣.

  21) 세종실록 150,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현풍현 : 玄風縣 : 本推良火縣, 【推一作。】景德王改名玄驍, 爲火王郡領縣, 高麗改今名。 顯宗戊午, 屬密城任內, 恭讓王二年庚午, 始置監務, 且析密城之仇知山部曲以屬之.

 22) 훈몽자회 (1527) 최세진 : ; 미르 룡

 23)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 신라 良州 ; 密城郡 本推火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領縣五 尙藥縣 本西火縣 景德王改名 今靈山縣 (下略)

 24) 세종실록 150,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밀양 도호부 : 密陽都護府: 府使一人。 本推火郡, 新羅景德王改爲密城郡, 高麗因之。 顯宗九年戊午, 置知郡事 (下略)

 25)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 신라 양주 ; 密城郡 (中略) 密津縣本推浦縣[一云竹山]景德王改名今未詳 (下略)

 26) 세종실록 153, 지리지 강원도 춘천 도호부 양구현 : 楊口縣 ; 楊口: 縣監一人。 本高句麗楊口郡, 【一云要隱忽次。】新羅改楊麓郡, 高麗改楊溝縣, 爲春州任內。 睿宗元年, 始置監務。 【詳在狼川】 屬縣一。 方山, 本高句麗三峴縣, 新羅改三嶺, 爲楊麓郡領縣, 高麗改今名 (下略)

 27) 삼국사기 제37권 잡지 제6 : 고구려 우수주 ; 牛首州[首一作頭一云首次若一云烏根乃] (中略) 楊口郡[一云要隱忽次]猪足縣[一云烏斯廻]玉岐縣[一云皆次丁]三峴縣[一云密波兮] (下略)

 28) 삼국사기 제37권 잡지 제6 : 牛首州[首一作頭一云首次若一云烏根乃] (中略) 文峴縣[一云斤尸波兮] (下略)

 29) 세종실록 153, 지리지 강원도 회양 도호부 : 淮陽: 都護府使一人 (中略) 文登縣, 本高句麗文現縣, 【一云斤尸波兮】新羅改今名, 爲大陽郡領縣。 高麗顯宗戊午, 移屬春州任內, 後復屬交州, 本朝因之。 嵐谷縣, 本高句麗赤木鎭, 新羅改名丹松縣, 爲連城郡領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