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 제 C-2014-029510호 및 제 C-2015-018493호 |
|||||||||||||||||||||||||||||||||||||||||||||||||||||||||||||||||||||||||||||||||||||||||||||||||||
奈乙 김 성혁
본 공개 질의서는 내용증명이라는 극단적인 형식을 통해서, 한국지명학회 회장에게 송부한 것입니다. 그 까닭은 한국지명학회 전현직 임원들에게 편지나 mail을 통하여 의사를 전달하면, 처음에는 관심을 갖는 듯 하다가, 말문이 막히면, 스팸처리를 하는 등으로 소식을 끊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들의 논문이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릴까 우려하여, 진실 보다는 교수직 유지를 우선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공개 질의서입니다. 공개 질의서에 같이 탑재된 도면은 질의서와 함께 송부한 또다른 70여 쪽이 넘는 책자에 실린 그림인데, 그 내용은 Chapter 1. ~ Chapter 11에 실린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그들은 아마 또다시 "무시 작전"으로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개질의;서 1. 2. 3.의 내용을 보시면 왜 그들이 답을 못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위「재야」의 공개 질의서 조차 답을 못할 정도라면, 문제는 문제입니다.
내 용 증 명
수 신 : 한국지명학회 S 회장 귀하
발 신 : 경기도 (이하 주소 생략) 김 성혁 拜
제 목 : S 한국지명학회 회장께 공개질의 합니다. --------------------------------------------------------------------------
내 용 : 제번하고,
1. 한국지명학회 회장 자격으로 공개질의에 답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본 공개질의에 관한 내용증명 및 S 한국지명학회 회장의 답변서는 언론기관 등에 공개할 수 있으며, 행정심판 및 법원의 소송자료로 사용할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3. 그 까닭은 역대 한국지명학회 회장단(각 이사 포함)의 「삼국시대 고지명 연구」라는 내용의 각종 논저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었고, 그 풀이조차 잘못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4.「재야(在野)가 감히 교수에게 무슨 망발인가?」라고 하시겠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한국지명학회 임원들께서 「재야(在野)」로 보고 있습니다. 억울하시면 본인의 질문에 명확히 답변을 해 주시고, 만약 본인의 질문이 잘못 되었다면, 그 근거를 명확히 들어, 사법당국에 고소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시간을 빼앗은 죄 받아야 하겠지요.
5. 본인의 질의는 「地形, 地物」등의 근거에 의거, 삼국의 고지명을 「이두형식」을 빌어 풀이한 것을 가지고, 질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지명학회 회장께서도 「地形 地物」등의 각종 근거에 의거, 한국지명학회 임원들의 삼국의 고지명 풀이가 옳음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래와 같이 질의를 하겠습니다. 성실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래
1. 고지명 학자들께서 삼국시대 고지명 풀이를 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논저로서 일단 50% 정도의 가치가 상실되었습니다. 이는 대학교수 또는 학자의 논저로는 중대한 결함입니다. 삼국시대 고지명 풀이는 「언어학과 지명학」이 합쳐진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의 고지명에 대하여, 「地形 地物」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이, 「언어학적」인 풀이만 있다는 것은, 논저로서 가치가 50% 상실된 것입니다.
2. 본인의 연구에 의하면, 원삼국시대부터「지형」을 보고,「작명」한 것입니다. 본 질의서와 함께 다른 우편으로 함께 송달한 첨부물에는,「地形, 地物」과의 관계를, 일일이「위성지도」나「위성사진」및「항공사진」등의 근거 자료를 통하여 풀이한「첨부물」을 동봉했습니다. 앞의 번호는 다른 우편으로 송달한 첨부물의 번호와 동일합니다.「지형」과「지명」과의 관계를 첨부한 서류에서 풀이한 것입니다. 서로 비교하여 보고 답하시기 바랍니다.
다 음
1.1.1.1. 신라 일직현(一直縣) :
가) 신라 일직현(一直縣)은 「 나) 고지명 학자들의 연구에 一直縣의 「지형」을 보고 연구한 경우가 있는가? 다) 신라의 지명에는 곶(串)이 고성군의 고지명「古斯浦」외에는 보이지 않지만, 一直縣을 지형과 비교하여 풀이한 것은 곶(串)이지 않은가? 라) 더불어 백제의 굴직현(屈直縣), 고구려의 실직군(悉直郡)도 곶(串)이거나, 곶과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1.1.1.2. 고구려 한성군(漢城郡) :
가) 고구려 한성군(漢城郡)은 「지형」을 보고 작명한 것이 아닌가? 나) 고구려 「본지명 漢城郡」과 「일운 지명 漢忽」 이외의 「乃忽」「息城」과의 대응관계로 보아, 「漢城 = 漢忽 = 乃忽 = 息城」의 관계의 등식이 성립한다면, 그 풀이는? 다) 신라 一直을「지형」과 비교하여, 「 라) 「 마) 만약 고구려 숫자 「一」이 「
1.1.1.3. 백제 한수(漢水) :
가) 백제 한수(漢水) 역시, 「 나) 백제 숫자 「一」은 「 다) 그렇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숫자 「一」또한 「 라) 우리 언어에서 「
1 .1.1.4. 백제 웅천(熊川) : 곰내 또는 고마내
가) 백제가 웅천(熊川)이라 작명한 것은, 「곰 지형」에 의한 것인가? 민족정서인 단군신화속의 「곰」과 관련된 것인가? 금강의 모습을 보고 답하라. 나) 熊川의 「지형」에 대하여, 고지명 학자의 논저에서, 거론한 적이 있는가? 다) 이처럼 커다란 「지형」을 작명한 것이, 「자연발생적」일 수 있겠는가? 라) 백제가 웅천(熊川)이라 작명한 시기는, 정확한 시기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AD475년 이전의 한성백제 시대이다. 이 시기에 기본적인 벌써 한자의 훈이 지금과 유사하지 않은가?
1.1.1.5. 고구려 母城郡과 신라 母山縣
가) 고지명 학자들의 논저에서 북한의 강원도 김화군과 전북 남원시 운봉읍의 지형을 통하여 고구려 母城郡과 신라 母山縣을 거론한 적이 있는가? 나) 「어미 母 지형」으로 같고, 고구려와 신라의 지명이 각각 「母城」과「母山」이라 기록했다. 적어도 고한국어족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언어인,「어미」는 「방언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어학자가 맞는다면, 어린아이 말을 참고로 하여 답변하시라. 다) 고구려 「본지명 母城郡」과 「一云 지명」을 수학공식처럼 「본지명 = 一云 地名」의 등식관계가, 항상 성립할 수 있겠는가? 부연하면 「母城郡 = 一云也次忽」관계라 할때, 다음에 거론하는 「於斯內縣과 一云斧壤」의 관계를 살펴 보고 답변하시라. 라) 母는 「대를 잇는 여인」이라는 의미로, 「잇기 也」가 쥐고 있는 것 아닌가? 一云也次忽을 「잇( 마) 강원도 김화군 김화읍과 전북 남원시 운봉읍이라는, 「어미 母 지형」을 본적이 없는, 고지명 학자들이 겨우 「母城郡 = 一云也次忽」이라는「대응관계」라는 무기 하나를 가지고, 그것도 音借만으로, 고구려는 「母」를 「也次」로 발음했다는 것은 억지가 아닌가?
1.1.1.6. 신라 마리현(馬利縣) : 경상남도 함양군 마리면, 안의면 일대
1) 신라 馬利縣은 「 2) 馬利縣은 함양군 마리면, 안의면 일대의 물과 땅이 만나서 만든 지형이 사람 「머리」형태의 지형이기 때문에, 작명한 것으로 보는데, 잘못 풀이한 것인가? 3) 삼국시대 지형과 지명과의 관계를 「지도」나「지형」등을 통하여 분석한 경우는 과연 몇 건이 있는가?
1.1.1.7. 고구려 살수(薩水) : 청천강(靑川江)
1) 한국지명학회 전 현직 회원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고지명 학자」라 한다. 「고지명 학자」로서 고구려 「薩水」인 「청천강」의 전체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2) 「薩水의 지형을 파악」하지 않고, 어떻게 고려가 작명한 「靑川江과의 대응관계」로, 고구려어 「薩」은 「푸르다」의 뜻이 될 수 있는가? 청천강의 지형을 보고 답하라. 3) 靑川江의 모습이 화살(矢)의 모양이라 「薩水」라 했다면, 「薩」은 현대어「살(矢)」과 동일한 발음과 뜻이 아닌가? 고구려는 「푸르다」를 「薩」이라 했다는 것은, 망발이 아닌가? 4) 고지명 학자의 「대응관계」라는 무기는, 「地形을 고려하지 않은 허망한 것」으로, 같을 수도 있고,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지 않은가? 고구려의 지명을 「본지명 = 일운 지명」의 수학적 등식으로 풀이한 것이라면, 「눈먼 장님이 코끼리 뒷다리조차 만지지 못한 채, 코끼리를 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5) 이처럼 큰 지형을 보고 작명한 「薩水」가 「자연 발생적」일 것인가? 태조왕이 漢의 낙랑을 치기 위하여,「정치적, 군사적」목적에 의해 「지형을 파악」한 결과일 것이 아닌가? 6) 고려가 작명한 靑川은 물이 맑고 푸르러서인데,「靑 = 薩」,「水 = 川」이라는「대응관계」는 청천강의「지형」을 분석했어도, 그러한 결과가 나왔을 것인가?
1.1.1.8. 신라 대목현(大木縣) : 경북 칠곡군 약목면(若木面)
1) 신라 大木縣은 「큰나모골」인가? 「큰목(neck)골」인가? 2) 고지명 학자중에 경덕왕이 개칭한 「溪子」와 「大木」의 지형을 비교 분석하여 신라 大木縣을 「큰나모골」이라고 논문을 작성한 학자가 있는가? 3) 칠곡군 若木面이 「삼국의 고지명 = 地形」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指標語로 보는데, 귀하의 의견은 어떠한가? 4) 대응관계는 「地形과의 대응관계」라고 주장하는데, 귀하의 의견은 어떠한가?
1.1.1.9. 신라 생서량군(生西良郡)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西生面)
1) 신라 生西良郡을 「地形과의 대응관계」로 「날셔곶(현대어 ; 날선 곶)」이라 풀이했는데, 잘못 풀이한 것인가? 2) 고지명 학자들의 신라 生西良郡의 풀이는 어떠한가? 3) 귀하의 회원들 중에서 신라 生西良郡이나, 고구려 지명 등을 「地形과의 대응관계」로 풀이한 경우가 과연 몇 건 정도나 되는가? 그 예를 들어주기 바란다. 4) 한국지명학회 회원들이 잘못 풀었거나, 풀지 못해, 고구려가 「퉁구스어」나「일본 숫자」닮았다고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북방계 언어인「 5) 전술했다시피 신라 고지명 중에 곶(串)이「古斯」,「直」외에 「良」도 있지 않은가?
1.1.1.10. 신라 추량화현(推良火縣)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1) 삼국사기에 신라 奈勿王을 一云 那密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신라 이두형 지명을 「勿=密의 대응관계」로 풀이하여, 신라 고지명 「密」을 「믈」의 음차라고 주장하였고, 현재는 정설이 되어 있다. 그런데 ⓛ 신라 推良火는 「밀(推) = 미르(龍)」이 아닌가? ② 고지명 학자들은 玄豊川 입구에 동물 머리 지형이 있음을 상상이나 했는가? ③ 「동물 머리 지형」을 「밀 推」라 했다면, 이 동물은 「미르(龍)」인가? 「믈(勿)」이겠는가? ④ 玄豊面의 대응관계는 「미르(龍)와 말(驍)이라는 동물 地形」이 아닌가? ⑤ 지형을 도외시하고,「奈勿王 一云 那密의 대응관계」에 의거, 「勿=密」로 풀이한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 아니한가?
1.1.1.11. 신라 추화군(推火郡) : 경남 밀양시(密陽市)
1) 경남 밀양시의 지형은 둥근 구슬을 물고 있는 동물 모습이다. 이를 신라 진흥왕은 推火라 했고, 경덕왕은 密城이라 했다.
ⓛ 「推 = 密, ② 밀양이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彌離彌凍國」이라는 것은,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또한 현대어에 은하수를 뜻하는, 「미리내(龍내)」가 언어로 아직 살아 있다. 「미리내」는「龍내」이므로, 밀양은 「미르(龍) ③ 둥근 구슬을 물고 있는 동물중에, 「龍」이외에 또 무엇이 있는가? 「推 = 密」의 관계로 생각하라. ④ AD1~2세기에「미르 龍」이라는 「音과 訓」및 「형상」이 한반도 남단인 경남 밀양에 들어왔다면, 이는 어느 곳에서 유입되었을 것인가? 한자의 이동은 한반도 「북→남」의 방향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龍의 훈 「미르」는 고한국어이기 때문이다.} ⑤ 고지명 학자들의 어설픈 고지명 풀이로, 고대 언어학 및 역사학을 훼손한 점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1.1.1.12. 고구려 삼현현(三峴縣) 일운 밀파혜(密波兮) :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1) 고구려 지명을 「本地名 = 一云地名과의 대응관계」로 고구려 숫자 「三」은 「密」이고, 이는 일본 숫자 「三 = 密 = みつ의 대응관계」로 풀이 했다.(다만 密을 「mir」로 발음했지만.)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은 휴전선 바로 아래에 있다. 방산면의 지형을 지도로 본 일이 있는가? 2) 아무리 늦게 잡더라도, AD1~2세기에「미르 龍」이 「북→남」으로 전해졌다면, AD5세기(장수왕 시기) 고구려 龍의 한자 훈과 음이 「미르 龍」임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3)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일대를 흐르는 「내와 땅이 만나서 만든 지형」은, 「입벌린 동물 모습」이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이 「미르 龍」의 지형인가? 일본 숫자 「三 = 密 = みつ」의 지형인가? 그 근거는 대응관계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4) 이는 「본지명 = 일운 지명」이라는 수학적 등식관계를 맹신한 결과가 아닌가? 5) 고구려 숫자 「一은 6) 광개토왕비문에 적혀있는 泰山韓城은, 百殘의 수도 漢城을 말하는데, 백제식으로 표기하면, 漢山漢城이다. 이로 미루어 고구려도 「漢山 = 泰山, 韓城 = 漢城」이 아닌가? 百殘의 수도 漢城을 「韓城」으로 표기한 것은, 고구려 제3의 도시「漢城 -재령군-」때문이 아니겠는가?
1.1.1.13. 백제 기군(基郡) : 충남 서산시 일대
1)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回基洞은 「돌터」로, 전형적인 「지명어」로 된 동네다. 여기서 「돌」은 중랑천을 의미한다. 그런데, 충남 서산시 대산읍 일대는 「게 발」모양이고, 서산시 일대에서는 「게」를 「그이」또는「긔」라고 부르며, 전남 남해안에서는 「기」라고 한다. 백제 基郡은 「터골」인가? 「긔골」또는 「기골」인가? 2) 전통적인 「지명어」로 된 것처럼 보이는, 「삼국시대 고지명」조차도 이러할진대, 「지형」을 도외시한 채, 언어학적인 재능만으로 이루어진, 고지명 학자의「삼국시대 지명」풀이는, 무수한 「誤謬」를 낳았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지명학은 인문학이 아니고, 인문과학이기 때문에 질의하는 것이다.) 3) 이렇게 커다란 「지형」을 보고 작명한 것이 과연 「자연발생적」일 수 있겠는가?
1.1.1.14. 고구려 저족현(猪足縣) 일운 오사회(烏斯廻) :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일대
1) 강원도 麟蹄郡 일대 지형과 고구려 猪足縣의 대응관계는 잘 알다시피, 생물학에서 말하는 有蹄類로, 「굽」이 있는 동물을 말한다. 麟蹄郡 일대 지형은 소양강이 만든 지형으로, 소위 「돼지 족발 지형」이다. 麟蹄郡 일대 지형을 고찰하고, 논문을 작성한 회원이 있는가? 2) 「猪足 = 烏斯廻의 대응관계」는 「돋발 = 거먹이(것)돌」로 풀이했는데, 잘못 풀이했는가? 3) ⓛ 고구려 한자 「돌 廻」는 전통적인 「지명어」이다. 동대문구 回基洞의 「돌터」및 「돌廻, 回」와 같은 형태로, 고구려어 「돌 廻」는 신라어「돌 梁」이 아닌가? ② 고구려 한자 「돌 廻」가 전통적인 「지명어」라면, 고구려 僧梁縣과 梁骨縣의 「돌 梁」은 「돌(현대어 도랑)」이 아니겠는가? 4) 고구려 지명어 廻가 「돌(현대어 : 도랑)」이라면, 고구려어에 「돌다.」라는 언어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고구려 한자 「廻」의 훈 또한 「돌다」여야 하지 않겠는가?
1.1.1.15. 원삼국 초기 마을 굴아화촌(屈阿火村) : 울주군 범서면 굴화리(屈火里)
1) 울주군 범서면 屈火里 일대 지형을 파악하고, 屈阿火村을 풀이한 논저가 있는가? 2) 지형으로 파악한 屈阿火는 「구븐믈가 3) 신라 경덕왕이 개칭한 울산광역시의 河曲 一作河西는 두 가지 지형으로, 屈火里의 구븐믈가
ⓛ 河西는 울산광역시 앞의 지형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② 울산광역시의 신라 본지명과 一作地名도 두 가지 지형 때문이 아닌가? 만약 한가지 지형으로 동일하다면, 「河曲 一作河西」와 함께「海曲 一作海西(강원도 울진군 덕신면 - 고구려 波旦縣」도 함께 풀어 주기 바란다.
1.1.1.16. 백제 마산현(馬山縣) : 충남 서천군 한산면, 마산면, 부여군 양화면 일대
1) 「말벌」은 분명 「큰 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백제 馬山縣이 「크다+山」의 조합인가? 「 2) 韓山縣은 분명 「 3)「지형의 판독」없는, 삼국의 고지명 풀이가 가져온 결과는, 참담하지 않는가?
1.1.1.17. 백제 가림군(加林郡) : 부여군 임천면 일대
1) 林은 「수풀 林」이다. 「수풀 林」은 「지명어」가 될 수 없고, 지명어는 현대어 「들 林」즉 백제 고구려어 「두루 林, 또는 드르 林」이다. 동의하는가? 2) 백제 가림군(加林郡)은 금강 일대와 임천면 일대 물가에 논밭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붙은 지명으로, 加林을 「가드르(현대어 : 물가 들)」또는 「가두루(현대어 : 물가 들)」로 풀이했는데, 틀린 것인가? 3) 별다른 특이한 지형이나 지명이 없는 경우에도, 이처럼 「지명어」를 통하여, 그 고장의 지형을 그려 냈다. 잘못된 생각인가?
1.1.1.18. 백제 고미현(古彌縣) : 전남 영암군 미암면 일대
1) 전남 영암군 미암면과 영산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넓은 들은 「코 모양」인데, 「코」의 고대어는 「고」가 아닌가? 2) 백제 古彌縣이 「코」의 지형이라면, 신라 경덕왕이 개칭한 昆眉縣과의 대응관계는 「코와 눈썹」 즉 「얼굴」이 아닌가? 3) 彌의 훈에는 「ⓛ 미륵 ② 두루」가 있는데, 「② 두루」가 「들」의 고대어 「드르」나 함경도 방언「두루」와 음이 유사하므로, 백제 古彌縣은 「고드르」또는 「고두루」로 현대어 「코 들」이 아닌가? 4) 백제 古彌縣의 풀이는 「지형」과 「한자의 훈」이 아니면 풀 수 없는 지명이 아닌가? 5) 彌의 훈「② 두루」가 조선중기어 「드르」의 훈음차가 되기 위해서는, 삼국 한자의 훈이 현대와 많이 닮아야 하는 것 아닌가?
1.1.1.19. 백제 관미성(關彌城)과 광개토왕릉비문 각미성(閣彌城) :
1) 백제 關彌城과 광개토왕릉비문 閣彌城이 같은 곳으로 역사학계는 파악하고 있으나, 위치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어느 지점으로 알고 있고, 위치는 미상이다. 그런데 백제 古彌縣과 關彌城이 언어학적으로 같은 형태의 지명이다. 백제 關彌를 關門두루(드르)로 풀이했고, 광개토왕릉비문 閣彌城을 「樓閣두루(드르)」로 풀이했다. 잘 못 풀이한 것인가? 2) 백제 關彌城을 고구려 於乙買串으로 추정한다. 사실 여부는 접어두고, 고구려 於乙買串인 교하읍 인근에 있는 오두산성 일대 지형은 串이 아닌가? (고지명 학자들이 고구려 於乙買串을 풀려고 논저 속에서 헤맸지만, 정작 교하읍 인근에 오두산성과 통일전망대 일대라는 串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 이는 지형을 모르기 때문이다. 고구려인은 이 오두산성 일대의 지형을 보고, 「임진강과 한강이 얼었기 때문에 於乙買串이라 한 것을 모르고」 있다.) 3) 고지명학회의 회원 중에 「於乙買串」의 「於乙」을 「늣」계열로 풀이하고 있는데, ⓛ 임진강과 한강이 어는 곳에 있는, 交河라는「얼매곶」이 「늣매곶」이어야 하는가? ②「於乙」을 「늣」으로 읽는 이두법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이는 「얼운 長」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학자가 아닌가? ③ 오두산성 일대가 임진강물과 한강물이 서로 섞이는 곳에 있는, 串(於乙買串)이라는 것을, 지도에서 찾아 본적이나 있는가?
1.1.1.20. 진한 소국 압량국(押梁國) : 경산시 압량면(押梁面)
1) 경산시 압량면 일대는 금호강과 남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지형인데, 마치 손을 옆에서 바라본 형상으로, 손으로 경산시 일대를 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압량면 일대 지형을 보고, 押梁을 풀이한 논저가 있는가. 2) 押梁은 「누런들」이 아니라, 「누르 3) 이는 진한 소국 압량국이 존재하던 시기에, 군주의 명에 의해 지형을 파악하여, 押梁(누르돌 또는 누르
1.1.1.21. 신라 노사화현(奴斯火縣) : 경산시 자인면 일대
1) 고지명 학자들은 노(奴)를 내(川)의 음차로 보고 있는 것이 정설이다. 신라 노사화현(奴斯火縣)도 그러한가? 2) 신라 奴斯火縣은 경산시 자인면 일대로, 물론 금호강과 오목천이 만나서 만든 곳이다. 그런데 경산시 자인면 일대 특히 압량면 금구리 일대 지형을 보았는가? (고대에는 큰 산과 내가 경계였으므로, 금구리는 자인현에 속했다.).) 3) 금구리 일대 지형은 「맨발」을 옆에서 바라본 형태이다. 이 「맨발의 지형」을 奴斯火라한 것이다. 奴斯火를 「죵것
1.1.1.22. 가야 대사국(帶沙國) : 경남 하동군 하동읍~악양면 일대
1) 日本書紀 계체천황(繼體天皇) 7년 11월 기록에 가야 대사국(帶沙國)이 나온다. 물론 임나일본부설 때문에, 꺼려하는 가야국이지만, 한.일 정통 역사학계에서도 임나일본부설은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가야 帶沙國은 존재했다. 帶沙를 고대어로 풀이하면, 「 2) 하동읍은 韓多沙郡이고, 악양면은 小多沙縣이다. 이는 섬진강의 「몰 3) 지형을 토대로 日本書紀의 가야 帶沙國과 삼국사기 지리지의 韓多沙郡과 小多沙縣은 동일한 「몰 4) 고지명 학자들의 논저에, 경남 하동군 하동읍~악양면 일대 지형을 거론하고, 이 일대가 섬진강의「몰
1.1.1.23. 백제 마돌현(馬突縣) : 전북 진안군 마령면(馬靈面) 일대
1) 백제 馬突縣은 전북 진안군 馬靈面 일대를 말하는데, 저명한 고지명 학자는 논저에서 馬突을 「지명어」로 「큰들」이나「큰돌(도랑)」임을 주장했고, 현재 고지명 학자들은 정설이라 한다. 그런데 전북 진안군 馬靈面 일대는 마령면 8번지에 馬耳山이 있다. 馬靈面은 산악지대로, 포크레인이 없었던 예전에는 집 지을 터조차도 마땅치 않았던 곳이다. 이러한 산악지대도 「큰들」이나「큰돌(도랑)」이라 하는가? 고지명 학자들은 국어학자 맞는가?
ⓛ 마령면 사무소에 문의하여,「큰 돌(도랑)」이 있으면 기록하시라. ② 역시 마령면 사무소에 문의하여,「큰 들판」이 있으면, 기록하시라.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될 정도라면, 이름 정도는 있을 것이 아닌가? 2) 백제 馬突과 고려~조선초 馬耳의 대응관계로 고찰하면, 馬突은 「 3) 전북 진안군 馬靈面 지형을 제대로 판독했으면, 이런 따위의「헛소리」가 논저에 등장할 수 없었을 것 아닌가? 백제가 마이산일대를 보고, 작명한 것조차 모르는 것이 아닌가?
1.1.1.24. 백제 돌산현(突山縣) : 전남 여수시 돌산읍 일대
1) 백제 突山縣은 전남 여수시 돌산읍 일대 섬으로, 돌산도(突山島)라 부른다. 이 돌산도 앞바다는 수심 40m ~ 60m 정도의 바다로, 5~6만 년 전에는 이 바다가 넓은 들판이었다. 이 당시는 빙하시대로, 한반도가 중국 대륙과 연결된 시기였다. 돌산도에 도랑이나 들판이 있었다면, 5~6만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돌산도는 산의 중턱과 봉우리인 셈이다. 산 중턱과 봉우리에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될 정도의「도랑」이나「들판」이 있으면, 돌산읍 사무소에 문의하여, 그 이름을 기록하시라. 적어도 이름 정도는 있을 것이 아닌가? 2) 백제 突山은 현대어 「돌山」이 아닌가? 3) 백제 突山이 현대어 「돌山」이라면, 사비시대 漢字入聲 韻尾 「~t」는 「~r」로 유음화 되어 있고, 그 음은 지금과 같은, 「돌(石)」이 아닌가?
|
Copyright ⓒ pasteltone.com